자기 계발서가 팔릴수록 자기 계발이 안 되는 이유
매년 수백 권의 자기계발서가 쏟아지고, 매년 수백만 명이 그 책을 산다.
그런데 왜 우리는 매년 똑같은 자기 계발서를 또 사고 있을까.
책이 문제인가, 우리가 문제인가.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언제나 자기계발서가 있다.
제목만 다를 뿐, 메시지는 대개 비슷하다. 일찍 일어나라, 습관을 바꿔라, 생각을 바꿔라,
돈 공부를 해라, 자신을 사랑하라. 사람들은 그 책들을 사고, 밑줄을 긋고, 독후감을 SNS에 올린다.
그리고 몇 달 뒤, 다시 서점에 가서 또 다른 자기 계발서를 산다.
이 패턴을 눈치챘다면 한번쯤 이런 질문을 해봤을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많은 자기계발서를 읽었는데 아직도 이 모양인가."
요즘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고 있다.
무려 7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인데, 정가가 6,500원이다.
처음엔 "이게 말이 돼?" 싶었다. 읽으면서 또 놀랐다.
보통 자기계발서들이 "당신은 할 수 있어요, 당신은 소중해요"를 반복할 때, 이 책은 정반대다.
"당신이 가난한 건 당신 탓이다", "읽기만 하고 행동 안 하면 쓰레기다"라고 대놓고 쓴다.
처음엔 불쾌했다. 근데 읽다 보니 오히려 그 불편함이 뭔가를 건드렸다.
달콤한 말에 무뎌진 감각이 살아나는 느낌이랄까.


자기 계발서 시장의 역설
한국 출판 시장에서 자기 계발 분야는 매년 상위권을 차지한다. 경기가 나쁠수록, 취업이 어려울수록,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자기계발서는 더 잘 팔린다. 이건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현상이다.
| 지표 | 수치 |
|---|---|
| 국내 자기계발서 연간 출판 종수 | 실용 분야 연 5,000종 이상 |
| 자기계발서 평균 독자 보유 권 수 | 10권 이상 (교보문고 설문) |
| 자기계발 강의 시장 규모 (국내) | 연 2조원 이상(2021년 기준) |
| 자기계발 목표 달성률 | 10~20% 내외 |
마지막 수치가 핵심이다. 자기계발서를 읽고, 목표를 세우고, 플래너를 사고, 강의를 듣는 사람들 중 실제로
목표를 달성하는 비율은 채 20%가 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나머지는 책을 읽는 행위 자체로 무언가를 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실제 행동은 하지 않는다.
이것이 자기계발 산업의 가장 큰 아이러니다.
책이 팔릴수록 자기 계발 시장은 커지지만, 독자들의 삶이 실제로 바뀌는 비율은 극히 낮다.
그리고 삶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또 다른 자기 계발서를 사게 된다.
왜 읽어도 바뀌지 않는가
1. 독서가 행동을 대체한다
심리학에서 '대체 행동(substitution behavior)'이라는 개념이 있다.
실제 목표 행동 대신, 그 목표와 관련된 주변 행동을 함으로써 만족감을 얻는 현상이다.
운동을 해야 하는데 운동복을 사는 것, 공부를 해야 하는데 형광펜과 스터디 플래너를 사는 것이
대표적이다.
자기계발서 독서도 마찬가지다.
"부자가 되어야지"라는 목표를 가진 사람이 부자 되는 법에 관한 책을 읽으면, 뇌는 실제로 부자가
되기 위해 뭔가를 한 것처럼 착각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는 착각이 오히려 실제 행동의 동기를 낮춘다.
이것을 심리학자들은 '목표 대체(goal substitution)'라고 부른다.
《세이노의 가르침》에 이런 구절이 있다. "책을 읽고 감동받아서 무릎을 쳤다면, 그 감동은 딱 거기까지다.
행동하지 않으면 그 감동은 오히려 독이다. 감동받은 척 스스로를 속이기 때문이다."
처음 읽었을 때 뜨끔했다. 나는 지금까지 몇 권의 자기 계발서에 밑줄을 긋고 감동받으며 그걸로 끝냈는지
세어봤다. 세다가 그만뒀다.
2. 정보 과잉이 오히려 혼란을 만든다
어떤 자기계발서는 "일찍 일어나라"라고 하고, 다른 책은 "수면이 제일 중요하다"라고 한다.
어떤 책은 "목표를 크게 세워라"고 하고, 다른 책은 "작은 습관부터 시작하라"라고 한다.
어떤 저자는 "혼자 독하게 해라"고 하고, 다른 저자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지속된다"라고 한다.
독자 입장에서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을수록 이 상충되는 메시지들이 쌓인다.
그 결과,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자기 계발 혼란'에 빠진다. 책을 읽을수록 더 복잡해지고,
더 복잡해질수록 행동이 어려워지는 역설이다.
3. 자기계발서는 '내 이야기'가 아니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는 미국의 백인 중산층 남성이 쓴 성공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다.
혹은 극단적인 성공을 거둔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한 내용이다.
그런데 독자의 환경, 자본, 관계, 기회는 저자와 완전히 다르다.
"나는 이렇게 해서 성공했다"는 말이 나에게도 유효하다는 보장이 없다.
이 맥락의 불일치가 실패를 만들고, 실패는 자책으로 이어진다.
"책에서 시키는 대로 했는데 왜 난 안 되지?"라는 질문이 자기 효능감을 갉아먹는다.
《세이노의 가르침》이 다른 자기 계발서와 가장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저자 세이노는 자신을 성공한 사람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가난했던 시절, 실패했던 순간, 창피했던 경험을 그대로 쓴다.
"나는 이래서 성공했으니 따라해라"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살았고 이런 생각을 했다,
판단은 너희가 해라"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읽으면서 '이건 나한테도 해당되는 말인가'를 계속 스스로 묻게 된다.
수동적으로 밑줄만 긋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자기 계발서가 진짜 팔리는 이유
자기 계발서가 팔리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변하고 싶은 감정'을 소비하기 때문이다.
자기 계발서를 사는 순간, 사람은 이미 변화의 첫걸음을 내디딘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 기분 자체가 상품이다.
출판사는 이 심리를 잘 알고 있다. 제목은 점점 더 자극적이고 직접적으로 변한다.
'~하는 법', '~의 비밀', '~하면 성공한다' 등등.
마치 책 한 권을 읽으면 인생이 즉시 바뀔 것 같은 기대감을 만든다.
그리고 그 기대감은 구매로 이어진다.
이것은 독자의 어리석음이 아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방법'을 찾는다.
자기 계발서는 그 방법을 제시하는 척하는 가장 저렴하고 접근하기 쉬운 형태의 위안이다.
위안을 파는 산업이 건강의 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한때 자기 계발서를 1달에 1권 정도는 읽었다. 읽으면서 "올해는 다를 거야"라고 생각했다.
근데 어느 해인가 연말에 그 책들을 펼쳐보니, 전부 비슷한 구절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매년 같은 문장에서 같은 감동을 받고 있었다.
나는 책을 읽는 게 아니라, 감동받는 행위를 소비하고 있었던 거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 한동안 자기계발서를 아예 안 읽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기간에 실제로 하고 싶은 걸 더 많이 했다.
그렇다면 《세이노의 가르침》은 왜 다른가
이 책이 밀리언셀러가 된 이유는 분명히 있다.
첫째, 불편한 진실을 직접적으로 말한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가 독자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방향으로 쓰인다면, 세이노는 그 반대다.
"네가 못 사는 건 사회 탓이 아니라 네 탓이다"라는 말을 돌려 말하지 않고 직접 한다.
이 불편함이 오히려 각성을 만든다.
둘째, 저자가 익명이다. 세이노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책을 팔아서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인세를 포기하고 최저가로 책을 냈다는 사실이 독자에게
"이 사람은 뭔가 다른 이유로 이 글을 쓴 것 같다"는 신뢰를 만든다.
자기계발서가 팔릴수록 저자가 부자가 되는 구조에 대한 독자의 불신이 점점 커지는 시대에,
이 익명성과 가격이 역설적으로 신뢰의 근거가 됐다.
셋째, 행동을 강조하고 읽는 행위를 경계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이노는 책 안에서 "책만 읽지 마라"라고 계속 말한다.
이 자기 부정적 메시지가 다른 자기 계발서와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다.
독자를 독서 중독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자기계발서 그것이 이 책이 가진 이상한 힘이다.
읽다가 이런 구절에서 멈췄다.
"이 책을 읽고 나서도 변하지 않는다면, 당신에게 필요한 건 책이 아니다."
처음엔 '뭐야 이게' 싶었다. 근데 계속 생각이 났다.
나는 지금 무엇이 필요한 걸까. 책인가, 아니면 그냥 시작하는 것인가. 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이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것은 어떤 정보나 방법론이 아니라 이 질문이다.
그 질문 하나가 다른 자기계발서 스무 권보다 값졌다.
좋은 자기계발서와 나쁜 자기 계발서를 가르는 기준
자기 계발서를 무조건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
문제는 책이 아니라 읽는 방식과 선택 기준에 있다. 이렇게 가려 읽으면 된다.
읽을 만한 자기 계발서의 특징
- 저자 자신의 실패와 어둠도 솔직하게 쓴 책
- "무조건 이렇게 해라" 대신 "나는 이렇게 했다"로 쓴 책
- 읽고 나서 불편하고 찔리는 책 (달콤한 책은 의심할 것)
- 특정 독자층이나 맥락을 전제로 쓴 책
- 끝까지 읽었는데 아무 행동도 하고 싶지 않은 책이라면 버릴 것
피해야 할 자기계발서의 특징
- 제목에 '비밀', '법칙', '공식'이 들어간 책
- 저자의 성공 스토리가 책의 절반 이상인 책
- 읽고 나서 기분은 좋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책
- 매년 비슷한 제목으로 신간이 쏟아지는 저자의 책
자기 계발서가 팔릴수록 자기 계발이 안 된다는 역설은, 사실 책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변화를 원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변화가 두렵기 때문이다.
책은 그 두려움을 잠시 잊게 해주는 가장 지적으로 보이는 도피처다.
진짜 자기계발은 책을 덮고 나서 시작된다.
책에서 읽은 한 가지를 오늘 당장 하는 것.
밑줄 친 문장을 SNS에 올리는 대신, 그 문장대로 살아보는 것. 그것이 전부다.
그리고 어쩌면,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건 또 다른 자기 계발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참고 데이터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KPIPA) / 출판톡
- 문화체육관광부 2022 여가백서
- 잡코리아 설문 / 대구신문
- 위키백과 '노력 정당화' / Aronson & Mills (1959) 원본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