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은 왜 관광 콘텐츠가 되었나
광장시장, 통인시장, 국제시장.
사람들은 왜 마트 대신 시장을 찾고,
시장은 어떻게 여행의 이유가 되었는가.
몇 해 전, 서울 광장시장에 외국인 관광객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유튜브 영상 하나가 터지고 나서였다. 빈대떡과 육회, 마약김밥을 먹는 외국인들의 표정이
콘텐츠가 됐고, 그 콘텐츠가 또 다른 방문객을 불러왔다.
오래된 시장 골목은 어느새 예약 없이는 자리 잡기 힘든 ‘핫플레이스’가 됐다.
이 현상은 광장시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국의 전통시장이 지금 같은 일을 겪고 있다.
나는 어릴 때 집 근처 재래시장을 자주 갔다. 엄마의 손을 잡고 생선 비린내 가득한 골목을 지나면,
엄마는 꼭 따뜻한 어묵 하나를 사줬다. 그때는 먹거리가 풍족하지 않을 때여서 어묵하나도 너무 맛있었다.
지금도 그맛과 그 정서가 그리울 때가 있다. 시장은 내게 단순한 장소가 아니고 어린 시절 추억의
한 페이지다.
| 수치 | 내용 | 비고 |
|---|---|---|
| 1,401개 | 2023년 기준 전국 전통시장 수 | 전국 단위 통계 |
| 21조원 | 전통시장 연간 매출 추정액 | 시장 규모 지표 |
| 5배 | 광장시장 외국인 방문자 증가 | 팬데믹 이전 대비 |
쇠퇴하던 시장이 다시 살아난 이유
2000년대 초반, 전통시장은 분명히 죽어가고 있었다.
대형마트가 전국에 퍼지고, 온라인 쇼핑이 일상이 되면서 전통시장을 찾는 사람은 해마다 줄었다.
가격 경쟁력도, 주차 공간도, 신용카드 단말기도 부족했다.
시장 상인들의 평균 연령은 높아졌고, 젊은 세대는 시장을 ‘불편한 곳’으로 여겼다.
그런데 2010년대 중반부터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시장을 살린 건 시장 자체의 혁신이 아니었다.
SNS와 유튜브가 시장의 ‘날것 그대로’를 콘텐츠로 발견했다.
정제되지 않은 공간, 나이 든 상인의 손맛, 수십 년째 바뀌지 않은 메뉴판.
이것이 오히려 차별화된 경험으로 읽히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 통인시장에 갔을 때, 옆에 있던 20대 여성 둘이 엽전 도시락을 사며 “여기 진짜 감성 있다”라고 했다.
엽전으로 밥을 사는 방식이 MZ세대에겐 ‘체험’이었고, 할머니들에겐 그냥 오랜 장사 방식이었다.
두 세대가 같은 공간에서 전혀 다른 것을 경험하고 있었다.

전통시장이 제공하는 것 — ‘진짜’의 감각
현대 소비문화에서 가장 희귀한 것은 무엇인가. 놀랍게도, 그것은 ‘정제되지 않음’이다.
편의점은 어디서나 똑같고, 프랜차이즈 카페는 전국 동일한 맛이다.
우리는 예측 가능한 소비 환경에 익숙해졌고, 그 익숙함이 오히려 권태를 낳았다.
전통시장은 이 반대편에 있다.
같은 시장이어도 날마다 진열이 다르고, 같은 할머니 가게여도 오늘의 국물 맛이 다를 수 있다.
흥정이 존재하고, 덤이 있고, 상인이 먼저 말을 건다.
이 모든 불확실성과 인간적인 교류가 ‘진짜 경험’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여행 분야에서 이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해외여행에서 현지 시장을 방문하는 것은 이제 빠질 수 없는 코스가 됐다.
방콕 짜뚜짝 시장, 이스탄불 그랜드 바자르, 바르셀로나 보케리아 시장.
이들은 모두 ‘도시의 얼굴’이 됐다.
“시장은 그 도시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한 공간에서 보여주는 압축된 문화다.”
관광 콘텐츠가 된 대표 전통시장들
| 시장 | 특징 |
|---|---|
| 광장시장 | 서울 종로구. 100년 넘은 역사를 가진 시장으로, 마약김밥·육회·빈대떡이 유튜브 영상을 통해 외국인 관광객 필수 코스가 됐다. 주말엔 외국어가 한국어보다 더 많이 들린다. |
| 통인시장 | 서울 서촌. 엽전 도시락 체험으로 유명하다. 관광공사가 지정한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젊은 세대의 체험 소비 욕구를 시장 문화와 결합한 성공 사례다. |
| 국제시장 | 부산 중구. 영화 <국제시장>(2014) 이후 방문객이 급증했다. 근현대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공간으로, 감정 여행을 원하는 중장년층에게 호소력이 크다. |
| 망원시장 | 서울 마포구. 합리적인 가격과 신선한 식재료로 동네 시장 감성을 원하는 2030에게 인기다. 시장 특유의 정겨움을 찾는 젊은 세대 관광객이 늘고 있다. |
| 서문시장 | 대구 중구. 야시장 운영으로 전통시장과 야간 관광을 결합한 대표 사례다. 저녁 시간대 젊은 층과 가족 단위 방문객이 급격히 늘었다. |
SNS가 만든 ‘시장 관광’ 생태계
전통시장의 관광지화를 이끈 핵심 동력은 단연 SNS다.
특히 유튜브의 ‘먹방’ 문화는 전통시장의 음식을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조회수 수백만을 기록한 외국인 유튜버들의 광장시장 먹방 영상은, 그 어떤 마케팅 캠페인보다
강력한 홍보 효과를 냈다.
인스타그램도 빼놓을 수 없다. 시장의 낡고 오래된 풍경은 필터 없이도 ‘감성 사진’이 됐다.
녹슨 함석지붕 아래 노란 형광등, 커다란 솥에서 피어오르는 김, 빼곡하게 쌓인 과일 더미.
이 모든 것이 ‘레트로 감성’이라는 문화적 코드로 소비되고 있다.
시장 상인들이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시장은 콘텐츠가 됐다.
작년 여름에 망원시장을 지나다가, 20대로 보이는 남자가 생선 가게 앞에서 릴스 촬영을 하고 있는 걸 봤다.
생선 가게 할머니는 영문도 모르고 그냥 생선을 손질하고 계셨다.
그 장면 자체가 이미 콘텐츠였다.
할머니가 콘텐츠인 줄도 모르고 일하고 있는 그 자연스러움이, 사실 가장 강력한 콘텐츠인 거다.
관광지화의 그늘 — 시장이 잃는 것들
전통시장의 관광지화가 반드시 긍정적인 현상만은 아니다.
유명세를 탄 시장에서는 이미 젠트리피케이션의 조짐이 보인다.
광장시장의 일부 가게는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바가지요금’ 논란에 휩싸였다.
본래 인근 주민들이 장을 보던 생활 시장이 관광 인프라로 변모하면서
실거주자들의 접근성이 낮아지는 역설도 발생하고 있다.
더 본질적인 문제도 있다.
관광 콘텐츠로서의 전통시장이 지속되려면, 시장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시장이 변하지 않으려면 상인들이 나이 들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남아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관광객이 원하는 ‘진정성’이 실제로는 상인들의 오래된 삶과 생계를 전시하는
것일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그럼에도 시장이 사랑받는 이유
논란과 그늘에도 불구하고, 전통시장은 계속 사람을 끌어당긴다.
이유는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마트에서는 계산원과 눈이 마주칠 일이 없다.
온라인 쇼핑에서는 화면 밖의 사람을 만날 수 없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다르다.
두부를 사면서 “오늘 아침에 만든 거예요”라는 말을 듣고, 복숭아를 고르면 “이게 더 달아요”라며
상인이 하나를 더 얹어준다.
이 작은 인간적 교류들이 모여 시장의 ‘경험’을 완성한다.
그것은 알고리즘이 추천해 줄 수 없고, 플랫폼이 재현할 수 없는 것이다.
전통시장이 관광 콘텐츠가 된 것은, 어쩌면 우리가 점점 잃어가고 있는 무언가를 거기서 찾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난 추석 전날, 엄마의 심부름으로 동네 시장에 다녀왔다.
사람들이 부딪히고, 카트가 엉키고, 그야말로 전쟁터 같았다.
근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이 혼돈 속에 생동감이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오늘 시장 너무 복잡해서 힘들었다"하니 엄마가 수고했다며 만두를 쪄주셨다.
그 만두가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이 글을 쓰다 보니 알 것 같다.
결론 — 전통시장은 여전히 살아있는 문화다
전통시장은 우리가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지워온 것들의 목록이다.
흥정, 잡담, 덤, 냄새, 시끄러움, 불편함. 그것들이 지금 다시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오고 있다.
사람들이 시장을 관광 콘텐츠로 소비하는 것은, 그 효율의 바깥에 있는 무언가를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전통시장의 가치는 그것이 낡아서가 아니다. 그것이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참고: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및 공개보고서